주님의 영생(살과 피), 요한복음 6장 47절~59절에 대해 큐티하겠습니다.
요한복음 6장 47절~59절
예수님은 무리를 피해서 가버나움에 갑니다. 그 가는 과정에서 제자들이 풍랑을 만나는데요. 예수님이 물 위를 걸으시고 풍랑을 다스리며, 이를 해결해 주십니다. 안전하게 가버나움으로 가십니다. 그런데 무리는 계속해서 예수님을 찾습니다. 예수님이 자신의 빵을 마음껏 주시는 분이라 여겼습니다. 일부는 가버나움까지 와서 예수님을 찾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들이 빵만을 먹으려고 하는 마음이 있다는 것을 알고 질타하십니다.
6장 27절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기 위해 애쓰지 말고, 영원토록 남아 있을 양식을 얻기 위해 애쓰십시오.
예수님은 먹고 마시는 것이 썩은 양식이라 비유하십니다. 조금 과하다고 여길 수 있지만, 예수님께서도 우리가 먹고 마시는 문제에 대해서 그냥 놔두지 않으십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통해서라도 채워주십니다. 우리가 살아갈 양식을 먹이십니다. 인간은 육의 양식이 없으면 안 된다는 것을 누구보다 더 아시기에 그렇습니다. 하지만 이도 영혼을 위한 양식일 뿐입니다. 우리의 영혼을 살리시기 위해 먹이시는 양식이라는 겁니다. 군중들이 굶주림을 보시고 오병이어의 기적을 통해 육의 양식을 채워주십니다. 군중들을 육으로 먹어야 영의 양식을 주기 때문에 기적을 통하여 그렇게 하셨습니다.
그런 왜 빵의 양식을 썩은 거라 말씀하실까요? 우리는 늘 고민합니다. 어떤 집을 살까? 어떤 음식을 먹을까? 어떤 옷을 입을까? 이런 생각을 매일 하면서 삽니다. 물론 우리가 살아가는데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일단 채워주십니다. 이유는 영혼의 양식을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이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영혼입니다. 영혼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예수님은 육의 양식을 주는 이유도 영혼을 살리시기 위함입니다. 하지만 무리는 이를 깨닫지 못하고 오직 육신의 양식에만 매달립니다.
6장 42절 “아니, 저 사람은 요셉의 아들 ‘예수’가 아닌가? 우리가 그의 부모를 뻔히 알고 있는데, 자기가 하늘에서 내려왔다니, 도대체 그게 무슨 소린가?”
군중들은 예수님의 말에 혼란스러워합니다. 예수님의 태생을 알기에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어떻게 태어나고 어느 부모한테 자라는지 잘 아는데 말입니다.
47절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믿는 사람은 영생을 가지고 있다.
이들을 향해 예수님은 진정으로 말합니다. 먼저 나를 믿어서 영생을 받으라고 말합니다.
48절 나는 생명의 빵이다.
49절 너희의 조상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다.
50절 그러나 하늘에서 내려오는 빵은 이러하니, 누구든지 그것을 먹으면 죽지 않는다.
51절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이 빵을 먹는 사람은 누구나 영원히 살 것이다. 내가 줄 빵은 나의 살이다. 그것은 세상에 생명을 준다”
우리는 모두 다 예수님을 먹은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표현이 직설적이지만 이게 너무 중요하기 때문에 그렇게 말씀하신 겁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신다는 뜻은 예수님이 내 안에 거한다는 표현입니다.
이 당신의 군중들은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으라고 하니 이상하게 생각했습니다.
6장 66절 이 말씀을 듣고 난 뒤, 예수를 따르던 제자들 가운데 많은 이들이 예수를 떠나갔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예수님을 떠납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은 보았지만, 미련 없이 떠납니다. 중요한 것은 기적을 목격한다고 아둔한 우리가 믿음의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기적은 표적일 뿐 우리의 아둔함은 쉽게 살아지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래서 기적만 바라고 예수님을 믿는 믿음은 위험한 믿음입니다. 언젠가는 떠나기에 그렇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믿었다고 성격이 좋아지지 않습니다. 우리는 늘 자신의 본성을 따라 살아갑니다.
정말로 예수님을 믿고 나면 새롭게 영혼이 태어나는 겁니다. 새로운 생명을 받는 것입니다. 나의 옛사람은 죽고 예수님의 사람으로 다시 사는 겁니다. 자기 고집, 자기 계획, 자신의 목표는 싹 사라지고 다시 예수님의 사람으로 새로운 삶으로 사는 겁니다.
52절 그러자 유대 사람들은 서로 논란을 하면서 말하였다. “이 사람이 어떻게 우리에게 [자기] 살을 먹으라고 줄 수 있을까?”
53절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또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는 생명이 없다.
54절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있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살릴 것이다.
55절 내 살은 참 양식이요, 내 피는 참 음료이다.
56절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 있고, 나도 그 사람 안에 있다.
예수님이 내 안에 있다는 사실은 우리는 예수님을 먹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내 안에 거하신다는 겁니다. 예수님이 내 안에 거하면 진정으로 사람이 안 바뀔 수 없습니다. 하지만 예외도 있습니다. 예수님은 영접했지만 새 생명으로 살지 못하는 예도 있습니다. 그런 경우는 예수님이 내 안에 없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 결과는 세상의 눈으로 살아갑니다. 세상의 얘기를 하고 세상의 죄를 범합니다.
57절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고, 내가 아버지 때문에 사는 것과 같이, 나를 먹는 사람도 나 때문에 살 것이다.
58절 이것은 하늘에서 내려온 빵이다. 이것은 너희의 조상이 먹고서도 죽은 그런 것과는 같지 아니하다. 이 빵을 먹는 사람은 영원히 살 것이다”
오늘따라 성찬식이 생각납니다. 성찬식의 정확한 의미는 예수님이 우리 안에 거한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겁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각지의 성찬식을 오늘 해 보세요. 우리 안에 정말로 예수님이 거하시는지, 아닌지를 직접 확인해 보셨으면 합니다.
59절 이것은 예수께서 가버나움 회당에서 가르치실 때에 하신 말씀이다.
우리의 삶에서 영생이 죽은 것과 살아 있는 것은 완전하게 다릅니다. 그래서 오늘 진정으로 우리의 영생이 살아 있는지 한 번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형식적인 떡과 포도주는 안 먹고 안 마셔도 됩니다. 그냥 성령님이 내 안에 계시는 가를 확인해 보세요. 영생이 있는 분과 없는 분은 분명히 다르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이 세상의 부귀와 영광을 위해 기도를 합니다. 그것이 마치 예수님이 원하시는 것이라고 잘못된 믿음을 갖고, 말입니다. 물론 예수님이 여러분의 안위와 배고픔을 아십니다. 그래서 물질도 주려고 하십니다. 하지만 그것(물질)을 위해 여러분께 오시지 않습니다. 그거만 찾는다면 예수님은 바로 여러분을 떠나십니다. 무서운 말씀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영혼의 풍요함을 찾아야 합니다. 영혼이 살아야, 여러분이 살 수 있습니다. 내 영혼이 풍요로워야, 예수님이 찾아오셔서 함께하십니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어느 분은 예수님을 믿지만, 복은 받지 못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요. 예수님을 믿으면 복이 없을까요? 믿음을 통해서 예수님은 첫째로 우리는 속죄의 은혜를 주십니다. 시편 32편 1절 허물의 사물을 얻고 그 죄의 가림을 받은 자는 복이 있도다. 우리에게는 육신의 나병은 없지만, 영혼의 나병 환자들은 많습니다. 누구도 알면 안 되는 나만의 죄가 있습니다. 가까운 사람에게 더 감추고 싶은 속죄 말입니다. 이런 악한 죄가 몸에 있는데 예수님은 이런 죄인들을 향해 “떠나가라”라고 말씀하지 않으시고 품으십니다. 예수님이 직접 손을 대시어 이런 영혼의 나병 환자도 고치십니다. 대부분 이런 마음의 병이 있으시면 다 깨끗하게 씻고 싶은 마음이 있을 겁니다. 이런 속죄의 죄인들도 예수님은 깨끗하게 씻어주십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천국의 상금입니다. 이 땅에서 받은 상금이 없다고 불평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예수님은 공평하십니다. 천국에도 큰 상금이 있습니다. 이 땅에서는 비록 초라하고 보잘것없지만, 하늘에는 더 큰 상금이 있습니다.
짧은 이야기
한 할머니가 극심한 가난 속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 할머니에게는 아들이 하나 있었지만, 여러 해 전에 미국으로 떠나서 한 번도 할머니를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친척들은 할머니에게 아들이 한 푼도 도와주지 않냐고 자주 물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할머니는 얼굴이 붉어지며 아들이 도와주지는 않지만, 가끔 편지와 그림을 보내온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할머니는 친구에게 자랑하듯 그 그림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건 그림이 아니라 거액의 수표였습니다. 할머니는 오랜 세월 동안 쓸데없이 가난하게 살았던 것입니다.
우리는 귀한 것을 귀하다고 여기지 못합니다. 오늘 말씀은 예수님이 내 안에 거하는 사랑을 주셨습니다. 이 사랑은 눈에 보이지 않고 손에 잡히지 않습니다. 우리 영혼의 눈이 뜨이지 않으면 절대로 보지 못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영혼을 먹이시고 살리는 중요한 증표입니다. 이를 깨닫지 못하면 매일 영혼이 빈곤하여 비참한 삶을 영위하면 살 겁니다.
오늘은 예수님이 내 안에 거하는 하루가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성경'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겉모양으로 판단하지 말게 하옵소서, 요한복음 7장 1절~24절 (0) | 2024.09.11 |
---|---|
내 안에 마귀가 살 수 없도록 하소서, 요한복음 6장 60절~71절 (0) | 2024.09.10 |
오병이어의 기적, 요한복음 6장 1절~15절 (0) | 2024.09.06 |
예수님은 나의 주인이십니다. 요한복음 5장 30절~47절 (1) | 2024.09.05 |
38년 된 병자의 안식일, 요한복음 5장 1절~29절 (0) | 2024.09.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