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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예수님의 생수를 마셔라. 요한복음 7장 37절~53절

by 성경큐티 2024. 9. 19.

예수님의 생수를 마셔라. 요한복음 7장 37절~53절에 대해 큐티(QT)하겠습니다.

 

예수님의 생수를 마셔라
예수님의 생수를 마셔라

 

 

 

요한복음 7장 37절~53절

 

37절 명절의 마지막 날, 예수께서 일어나 사람들에게 큰소리로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목마른 사람은 다 내게로 와서 마시십시오.

 

38절 나를 믿는 사람은 성경에 기록된 말씀대로, 그의 안에서 생명수가 강같이 흘러나올 것입니다.”

이 예언의 말씀은 성령의 말씀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성령의 은혜가 넘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그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지금은 너무 좋은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자주 물을 비유하시는데요. 샘물(요한복음 4장 14절)과 생수의 강(요한복음 7장 38절)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샘물은 사마리아 여인을 구원한 것처럼 한 생명을 살린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죽었던 영혼을 살리는 샘물을 말합니다. 영생을 말합니다. 성령의 역사입니다.

 

또 하나의 역사는 생명수의 강을 비유하십니다. 에스겔 환상을 통해서 에스겔 47장을 보면 환상 중에 물이 흘러나오는 것을 봅니다. 생명수가 처음에는 발목, 허리, 머리까지 순차적으로 차는데요. 나중에 큰 강이 흐르면 주변에 생명수가 살고 그 생명을 통해 점점 식물, 조류, 동물, 모든 생명이 이 강을 통해서 하나씩 살아납니다. 복음이 들어가는 곳에 엄청난 변화가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대표적인 나라 중 하나입니다. 처음에는 미약한 물줄기지만 그 줄기를 통해 생명이 흘러넘칩니다. 이를 뜻 합니다.

 

중요한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38절 “생명수가 강같이 흘러나올 것이다” 앞에 구절을 보면 “나를 믿는 사람은 성경에 기록된 말씀대로….”라고 되어있습니다. 나의 주어는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그를 통해 생명수가 강같이 흐른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착각하는 게 있는데요. 성경을 많이 알거나 기도를 많이 하는 사람, 착한 사람이 생명수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전혀 아니고요. 오직 예수님을 믿는 사람을 통해서 생명수가 흐른다는 놀라운 사실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에게 말씀하신 겁니다. 만약에 지금 나에게 생수의 물이 흐르지 않는다면 예수님께 물어야 합니다. 내가 믿는데 왜 내 속에는 생명의 물이 흐르지 않는지 적극적으로 물어야 합니다. 하지만 그 원인을 찾으면 내 안에 문제가 있음을 알게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삶을 보면 모든 결정을 나 스스로가 합니다. 순간순간 자신의 경험을 믿고 결정해서 행동합니다. 오직 자신의 주관이 자신에게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 안에는 절대로 생명수가 흐를 수 없습니다. 이때는 조용히 나 자신이 예수님을 지금 믿고 있는지를 의심하세요. 오직 주님께 드리는 믿음을 통해서만 생수가 흐를 수 있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오늘도 우리 안에는 성령의 생명수가 흐르고 있습니다. 이를 알고 진심으로 깨달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의 신앙 고백, 갈라디아서 2장 20절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 아니요.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 믿음과 고백을 통해서 사도 바울은 전 지역을 생수의 강으로 변화시키는 기적을 보입니다. 오직 이 고백 하나로 말입니다. 내가 사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는 고백하나가 이런 기적을 만들었습니다. 

 

39절 이것은, 훗날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받게 될 성령을 두고 하신 말씀이었다. (하지만, 그때는 아직 예수께서 하늘의 영광 가운데로 돌아가시기 전이어서, 성령이 사람들에게 임하지 않았다.)

성령은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에 오신다고 하셨습니다. 지금은 우리의 마음에 계십니다. 이를 믿어야 합니다. 우리 마음을 관찰하시고 사랑으로 이끄심을 믿어야 합니다.

 

40절 이 말씀을 듣고, 군중 가운데 더러는 “이분은 틀림없이 그 ‘예언자’ 시다.”라고 말했다. 41절 그러자 어떤 사람들은 “이분이야말로 ‘그리스도’ 시다.”라고 했고, 또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갈릴리에서 그리스도가 나올 수 있단 말인가?

이들 군중은 양면의 모습을 보고 판단했습니다. 말씀을 진심으로 들은 자는 예수님이 그리스도임을 깨닫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겉모습, 출신만 본 사람은 성경의 예언에 말씀하신 게 다르니, 다른 해석을 합니다. 예수님이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심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는 말씀을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작은 아이가 성경을 읽고 말해줘도 그 말씀은 성령으로 만든 귀한 말씀이기에 자신을 낮추고 들어야 합니다. 말씀이 귀하게 여겨지지 않으면 우리의 눈과 귀는 자꾸 사람과 그 배경만을 봅니다. 그리고 그 사람의 가치를 평가합니다. 또 그 사람의 권위를 따집니다. 이런 아픈 잘못된 판단 속에 우리는 매일 살아갑니다.

 

42절 성경을 보면, 분명 그리스도는 다윗의 혈통을 좇아 다윗이 살던 베들레헴에서 태어날 것이라고 하지 않았던가?”라고 말했다.

 

43절 이렇게 예수를 두고, 사람들의 의견이 여럿으로 갈라졌다.

44절 그리고 그들 중에는 예수를 붙잡아 가려고 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아무도 예수께 손을 대지는 못했다. 45절 성전 경비병들이 맨손으로 그냥 돌아오자, 대제사장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이 호통을 쳤다. “왜 그자를 잡아 오지 않았느냐?”

46절 경비병들이 대답했다. “우리는 지금껏 한 번도 그분처럼 말씀하시는 것을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경비병의 말에 의하면 “우리는 지금껏 한 번도 그분처럼 말씀하시는 것을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라고 합니다. 처음 듣는 겁니다. 그러나 경비병만 처음 들을까요. 아닙니다. 이 땅에 있는 모든 사람이 처음 듣습니다. 그래서 권위가 있고 말씀 안에는 생명이 있습니다. 이를 본 바리새파 사람들은 자신보다 더 권위 있는 자가 나타나니, 자신의 자리가 위태롭고 체면이 구겨짐을 느끼는 겁니다. 그리고 지키고 싶은 마음이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마음보다 더 컸습니다. 오직 이 자리를 지켜서 자신의 권세를 누리고자 하는 마음이 더 강했습니다.

 

47절 바리새파 사람들이 어이가 없다는 듯 말했다. “그래서 너희도 넘어가 버렸단 말이냐?

많은 사람이 권위 있는 말씀에 순종하는데 이들은 자신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이는 우리도 똑같습니다. 우리가 일할 때, 예수님이 찾아오셔도 일에 방해가 되면 일단은 외면하고 일을 합니다. 보통 현실과 예수님을 이분법적으로 나눠서 생각하고 살아갑니다. 우리는 이렇게 세상을 살아갑니다. 일단 교회에서 나오면 세상의 사람과 똑같이 살아갑니다. 그래야 자신의 자리와 권위와 지위를 지킨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48절 유대인 지도자들이나 우리 바리새파 사람 중에는 그자를 믿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49절 율법이라고는 아무것도 모르는 이 어리석은 군중들은 저주받은 작자들이다.”

50절 그때 남몰래 예수를 찾아간 일이 있던 유대인 지도자 니고데모가 그들 중에 섞여 있다가 입을 열었다.

바리새인은 군중들이 율법을 잘 모르는 사람이라며, 예수님을 믿는 행위에 대해 비난을 합니다. 하지만 니로데모라는 율법의 완성자가 잘못된 바리새인에게 지적합니다.

 

51절 “우리 율법으로는, 어떤 사람을 판결하기 전에 먼저 그 사람의 말을 들어 보거나, 그 사람이 행한 일을 알아보게 되어있지 않소?”

 

52절 그러자 바리새파 사람들이 빈정거렸다. “당신도 갈릴리 출신이오? 성경을 자세히 살펴보시오. 갈릴리에서 예언자가 나온다는 말이 도대체 어디에 있단 말이오.”

 

53절 그리고 그들은 뿔뿔이 흩어져 각자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니고데모의 조언에 민망한 바리새파 사람들은 자주 말했던, 성경에 의하면 갈릴리에서 예언자가 어떻게 나오냐며 빈정댔습니다. 그리고 흩어집니다.

 

어느 성도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님만 나타나서 나를 잡아주셨으면 내가 예수님 안에서 잘할 것인데 하면서 예수님을 원망합니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요. 오늘 말씀은 정말로 예수님이 사람들 앞에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표적을 통해 말씀하시고 내가 그리스도라도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믿지 않았습니다. 아둔한 우리조차 그 당시에 있었다면 쉽게 믿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군중 심리의 원리에 의해서 그렇습니다. 요즘도 관심 있는 연예인이 나오면 먼저 하는 일이, 검색 사이트에 그 사람의 신상 조회를 하고 그 사람이 어디에서 와서 어떻게 지냈는지 인터넷으로 조사하는 게 우리의 일상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안에 생수의 강이 흐릅니다. 우리만 변화면 됩니다. 우리는 자신의 고집, 감정, 결정 등, 이런 것만 스스로 하지 않으면 됩니다. 누구에게나 예수님 성령의 강이 흐릅니다. 오직 예수님만 믿으시면 나머지는 성령이 도우십니다. 생수의 강이신 분 성령님이 우리 안에 있기에 그렇습니다. 우리 안에 성령님을 계심을 믿어야 합니다.

 

짧은 이야기 1

 

어느 목사님이 길에서 친구를 기다리는데, 어떤 여자가 굉장히 불안한 듯 줄담배를 피우며 서성이고 있었습니다. 목사님은 여자에게 다가가 자신을 소개한 후 전도를 했습니다. “무슨 걱정이 있으세요? 그렇다면 예수 믿고 평안을 얻으세요.” 그러자 그녀는 버럭 화를 내었습니다. “여보세요. 지금 제게 설교 따위는 필요 없다고요.” 무안해진 목사님은 그래도 그녀에게 심은 말씀의 씨앗이 꼭 열매를 맺게 해달라고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 그 여인이 목사님을 찾아왔습니다. “목사님, 얼마 전에 목사님께서 제게 전도를 하셨을 때 저는 화를 내었지요. 그런데 얼마 후 예수님을 믿는 친한 친구가 저에게 또 전도했어요. 그래서 결국 주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목사님께서 저에게 처음 전도하셨던 것이 헛된 일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말씀드리고 싶어서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우리는 작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전도도 자신이 없습니다. 그리고 무섭습니다. 하지만 오늘 말씀을 통해 성령님이 하시는 것을 알았습니다. 우리의 행위를 보시는 성령님은 못 할 것이 없습니다. 우리를 통해 성령의 강물이 흐르도록 도우소서. 기도하시면 좋겠습니다.

 

짧은 이야기 2

 

성능이 좋은 화재 탐지기가 설치된 아파트에서 불이 나 젊은 두 여자가 잠을 자다가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 화재 탐지기는 작동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 전날 밤 파티 음식을 만들다가 연기 때문에 탐지기가 울릴까 봐 그 탐지기를 꺼 놓은 탓이었습니다.

우리 안에 성령님이 함께 계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언제나 세상의 것을 보며, 이를 밀어냅니다. 그러면 당장은 편하고 즐거울 수 있으나 언젠간 중요할 때, 꼭 필요할 때, 성령님이 우리를 도우시지 못합니다. 이미 성령님이 우리 맘에서 떠나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하루 “성령님 내 안에서 거하소서. 우리가 믿습니다. 우리 믿음을 통해 생명수가 흐르게 하소서”라고 기도하며 시작하는 하루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