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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막달라 마리아가 첫 부활의 증인인 이유. 요한복음 20장 1절~18절

by 성경큐티 2024. 10. 7.

막달라 마리아가 첫 부활의 증인인 이유. 요한복음 20장 1절~18절에 대해 QT 하겠습니다.

 

막달라 마리아가 첫 부활의 증인인 이유. 요한복음 20장 1절~18절
막달라 마리아가 첫 부활의 증인인 이유. 요한복음 20장 1절~18절

 

 

 

요한복음 20장 1절~18절

세상 사람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믿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믿는 우리도 예수님의 부활을 자세히 설명하지 못합니다. 성경에는 여러 증인이 있습니다.

 

1. 빈 무덤입니다. 예수님의 시체가 없습니다. 당시 막달라 마리아와 베드로, 요한 등의 목격적자가 있습니다.

2. 초대교회 부흥입니다. 유대, 로마, 그리스 철학이 그 당시 엄청난 세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세력으로 초대 기독교를 말살시키려고 하였습니다. 당시의 성도들이 정말 부활의 사실을 못 믿었다면, 기독교를 목숨 걸고 지킨다는 것은 사실상 어렵습니다.

3. 사도들의 순교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증언하면서 순교했습니다. 만약에 제자들이 모여 꾸민 이야기라면 자신들이 순교까지 할 이유는 없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직접 목격하였기에 자신의 목숨이 중요하지 않고 당당할 수 있었습니다. 자신도 순교를 통해 예수님 곁에 갈 수 있다는 굳건한 믿음이 있기에 그럴 수 있었습니다.

4. 증인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고린도 전서 15장 6절 그 후에 그리스도께서는 500명이 넘는 형제들에게 동시에 나타나셨는데, 그들 가운데 일부는 죽었지만, 대부분은 아직도 살아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 6절에 보면 예수님의 부활을 동시에 본 증인들이 500명이 넘는다고 하였습니다.

5. 막달라 마리아입니다. 그 당시의 여성 증언은 법정으로 효력이 없습니다. 만약에 예수님의 부활을 조작했다면, 완벽하게 하려고 남자를 증언자로 썼을 겁니다. 여성으로 하지 않고요. 그리고 막달라 마리아는 귀신 들렸던 여자입니다. 이 당시 제일 믿지 못할 여성입니다. 당시 귀신 들렸던 이 여성을 기록한 자체가 신뢰성이 많이 떨어지는 행위입니다. 이는 성경이 사실을 기록했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6. 마지막으로 예수님이 말씀으로 보내주신 성령입니다. 우리 안에 있는 성령이 예수님의 부활을 확신하는 증표입니다.

요한복음 16장 7절 그러나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정말로 유익하다. 내가 너희를 떠나가지 않는다면, ‘돕는 분’께서 너희에게 오실 수가 없다. 내가 가야만, 내가 그분을 너희에게 보낼 것이기 때문이다.

 

위에 1번째~5번째는 지식(기록)으로 알 수 있지만, 마지막 6번째는 내가 아는 겁니다. 보혜사 성령님을 통해 아는 겁니다. 그래야 더 확실히 알 수 있고 믿을 수 있습니다.

 

1절 안식일 다음날 이른 새벽, 어둠이 채 가시기도 전에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의 무덤을 찾아갔다. 그런데 그녀는 무덤 입구를 막았던 큰 돌이 한쪽으로 옮겨져 있는 것을 보았다.

막달라 마리아가 첫 번째로 예수님의 무덤으로 갔습니다. 무덤 입구를 막았던 큰 돌이 한쪽으로 옮겨진 것을 보았습니다. 당시의 마리아는 많이 놀랐을 겁니다.

 

2절 막달라 마리아는 시몬 베드로와 예수께서 사랑하시던 다른 제자에게 달려가서 말했다. “누가 주님의 시신을 무덤에서 가져갔어요. 그 시신을 어디로 가져갔는지 모르겠어요!”

막달라 마리아는 놀란 마음을 진정하고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려고 달려갔습니다.

 

3절 그 말을 듣고, 베드로와 다른 제자는 예수의 무덤으로 급히 달려갔다.

막달라 마리아는 무덤에 가서 예수님의 시신이 없다는 거를 알고 제자들에게 알렸습니다. 제자 중에 베드로와 요한이 급히 무덤으로 달려갔습니다. 여기서 다른 제자는 요한을 말합니다.

 

4절 두 사람이 함께 달려갔는데, 베드로보다 걸음이 빠른 다른 제자가 먼저 무덤에 닿았다.

요한이 무덤에 먼저 도착했습니다.

 

5절 무덤에 도착한 그 제자는 몸을 굽혀 예수의 시신을 쌌던 고운 삼베 자락이 거기에 놓여 있는 것을 들여다보았으나, 무덤 안으로 들어가지는 않았다.

요한이 먼저 도착했지만, 용기가 없어 무덤 안으로는 들어가지 못합니다.

 

6절 시몬 베드로가 이내 뒤따라 달려왔고, 그는 예수의 무덤 안으로 들어갔다. 베드로는 거기에 고운 삼베 자락이 놓여 있는 것을 보았다.

뒤늦게 도착한 시몬 베드로가 무덤 안으로 들어갑니다. 예수님을 감쌌던 수의는 잘 개어져 있고 머리를 쌌던 수건도 잘 개어져 있습니다. 하지만 무덤 안은 시신이 없고 비어있었습니다. 이들은 너무 기이한 일들을 봅니다.

 

7절 또 예수의 머리를 싸맸던 수건도 잘 개어져, 그 삼베 자락 옆에 놓여 있었다.

 

8절 그제야 먼저 무덤에 도착한 다른 제자도 무덤 안으로 들어갔고, 그 또한 그것을 보고 믿었다.

요한도 용기를 내어 무덤으로 들어갔습니다. 이 둘은 예수님의 시신이 사라진 사실을 확인합니다.

 

9절 하지만 아직도 그들은, 예수께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반드시 살아나야 한다는 성경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베드로와 요한은 이때까지 예수님의 부활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냥 사실만 확인하고 시신이 어디로 갔는지 궁금한 상태로 돌아갑니다.

예수님은 죽으시기 전에 부활에 대해 여러 번 말씀하셨습니다. 대표적으로 마가복음 10장 32절 예수 일행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에, 예수께서 앞장서서 홀로 걸어가시자 모두들 놀라고 두려운 마음으로 뒤따라갔다. 예수께서 다시 열두 제자를 자기 곁에 불러 모으시고, 장차 자신에게 닥칠 일을 일러주셨다. 33절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에 도착하면, 인자는 배신을 당하여 대제사장들과 율법 교사들의 손에 넘겨질 것이다. 그들은 인자를 죽이기로 결정한 후 이방인들에게 넘길 것이다. 34절 그러면 이방인들은 인자를 조롱하고, 침 뱉고, 채찍으로 때린 뒤, 마침내 죽일 것이다. 그러나 인자는 사흘 만에 무덤에서 다시 살아날 것이다.”

 

제자는 말씀과 현실을 매칭하지 못했습니다. 우리도 세상을 살면서 얼마나 말씀대로 사세요? 혹시 말씀이 세상과 다르다면 마음으로 배척하지 않으세요? 그래서 세상의 잣대로 해보고 안 되면 그렇구나! 포기하면서 살지 않으세요? 말씀은 들어도 세상에 적용하지 못하는 삶을 사시지 않으세요? 오늘 베드로와 요한은 예수님의 부활 말씀을 직접 들었지만, 현실에 적용하지 못하고 그냥 현실의 사실만 확인하고 돌아갑니다. 우리도 매주 예배를 통해 말씀은 듣지만, 세상에 사는 사실에는 적용하지 못하고 그냥 물 흐르듯 잊고 현실에 안주해서 살아갑니다.

 

이런 자는 예수님의 부활 사실에 대해 믿기가 어렵습니다. 여러분도 부활의 사실을 지식으로는 알 수 있지만 내 영혼까지 내려오지는 못합니다.

예수님의 부활 사실을 진정으로 믿지 못한 자는 생명력이 없습니다. 내 안에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배는 너무 귀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예배 시간에 졸거나 다른 생각을 하는 것은 일주일 동안 하나님의 말씀 없이 산다고 인정하는 행위입니다. 물론 자신이 매일 성경을 묵상하고 큐티를 한다면 괜찮겠지만, 예배 시간에 졸거나 다른 생각하는 분이, 따로 시간을 내어 이런 행위를 할 수 있을까요? 그래서 먼저 예배라도 바르게 드리기를 부탁드립니다.

 

10절 그래서 두 제자는 자기들이 있던 집으로 다시 돌아갔다.

 

11절 하지만 막달라 마리아는 무덤 밖에 서서 계속 울고 있었다. 그녀는 울다가 몸을 굽혀 무덤 안을 들여다보았다.

하지만 막달라 마리아의 마음은 이들 제자와 다릅니다. 자신이 믿었던 한 분, 뿐이었습니다. 자신이 믿었던 전부였습니다.

막달라 마리아에게는 예수님밖에는 없었던 겁니다. 자신에게 제일 소중하고 믿었던 한 분입니다. 그래서 그 자리를 쉽게 떠날 수 없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예수님의 시신이라도 찾고 싶은 마음으로 그냥 울고 또 울고 있었습니다.

 

여러분은 내 마음에 예수님이 없으면 슬프시나요? 막달라 마리아처럼 울면서 예수님을 찾으시나요? 내 마음에 예수님이 없어 울어본 적은 있으시나요?

예수님은 간절히 찾는 자에게 오십니다. 그래서 간절한 막달라 마리아에게 제일 먼저 오셨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의 부활을 첫 번째로 본 증인이 되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처럼 간절히 주님을 찾고 원하면 내 마음에 반드시 오십니다. 주님과 만나는 것은 간절함이 필요합니다. 간절함이 없이는 내 안에 주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요즘 대충 신앙생활을 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잠시 이런 분들의 사정은 이해가 됩니다. 이런 분도 세상에서 바쁘다는 이유가 있기에 그렇습니다. 하지만 이는 어리석은 삶입니다. 주종이 바뀐 삶입니다. 만약에 육신이 영원하다면 어느 정도는 육신을 우선으로 살 수는 있겠지만, 현실적으로 육신은 세월에 따라 썩어서 죽어갑니다. 우리에게 영원한 것은 주 그리스도를 믿고 영원한 천국을 소망하는 겁니다.

그래서 나에게 주(主)는 하나님을 섬기는 삶이고 종(從)은 세상의 삶입니다. 종(從)의 삶이 주(主)의 삶보다 앞서면 절대로 안 되는 이유입니다.

 

12절 들여다보니, 예수의 시신이 있었던 자리에 흰 옷을 입은 천사 둘이 앉아 있었다. 한 천사는 시신의 머리가 있었던 자리에, 또 한 천사는 발치에 앉아 있었다.

막달라 마리아는 간절한 마음으로 다시 예수님의 무덤 안을 봅니다. 그런데 희한하게 처음에 볼 때는 못 봤던 일들을 보입니다. 천사들을 봅니다. 예수님의 간절함이 이들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바로 전에 베드로와 요한이 무덤 안으로 들어가서 확인을 했는데, 이들은 아무런 것들을 발견하지 못하고 돌아갔습니다. 이들은 단지 예수님의 시신이 사라진 사실만 확인하고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마리아는 세상을 다 잃은 것처럼 슬퍼하며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울고 또 울었습니다. 그때 마리아의 눈이 들립니다. 예수님을 볼 수 있는 눈이 떠집니다.

 

13절 천사들이 막달라 마리아에게 물었다. “여자여, 왜 울고 있느냐?” 막달라 마리아가 대답했다. “누가 우리 주님의 시신을 가져갔습니다. 그 시신을 어디에 두었는지 모르겠습니다.”

 

14절 이 말을 하고서, 막달라 마리아가 고개를 돌려 둘러보다가, 예수께서 거기 서 계신 것을 보았다. 하지만 그녀는 그분이 예수이신 줄 알아채지 못했다.

막달라 마리아도 순간 예수님의 부활하심은 깨닫지 못했습니다.

 

15절 예수께서 막달라 마리아에게 말씀하셨다. “여자여, 왜 울고 있느냐? 너는 누구를 찾고 있느냐?” 막달라 마리아는 그가 동산지기인 줄 알고 말했다. “여보세요, 당신이 그분의 시신을 옮겨 놓았다면, 어디에 두었는지 제게 말해 주세요. 제가 가서, 그분의 시신을 모셔 가겠습니다.”

 

16절 그때 예수께서 “마리아야!” 하고 부르셨다. 그러자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를 향해 돌아서서 히브리 말로 “랍오니!” 하고 외쳤다. (이 말은 ‘나의 선생님’이라는 뜻이다.)

간절히 예수님을 찾는 마리아에게 예수님이 이름을 부르십니다. 마리아도 예수님을 보고 깜짝 놀라며 “나의 선생님” 하라 외칩니다.

 

17절 예수께서 그녀에게 말씀하셨다. “나를 붙잡지 말아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돌아가지 않았다.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기를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의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의 하나님께로 올라갈 것이다.’라고 말하여라.”

예수님의 부활을 내 형제들에게 가서 알리라고 하십니다. 부활의 역사가 시작되는 날입니다. 무너졌던 모든 것이 새로 증언되는 날입니다.

 

18절 막달라 마리아는 즉시 제자들에게 달려가서, 자신이 주님을 뵌 일과 주님께서 자신에게 일러 주신 말씀을 그들에게 전했다.

당시 유대인과 로마인들은 그리스도를 핍박하면 그리스도가 사라질 것으로 알았습니다. 그 당시 대부분 지도자를 죽이면 그 집단들이 다 흩어져 사라지는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제자인 도마조차도 예수님을 만나지 못하면 믿지 못하겠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조차도 이런 데, 요즘을 사는 우리는 더 믿지 못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래서 다른 것 다 필요 없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직접 만나야 합니다.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님을 만나고 제자들에게 전할 때의 심정을 생각하고 우리도 간절함으로 예수님을 직접 만나야 합니다. 마리아가 예수님을 다시 만났을 때, 흥분되고 마음이 벅찬 순간을 생각해 보세요.

 

영(靈)적인 변화는 육(肉)적인 변화보다 더 큰 은혜입니다. 세상은 육(肉)적인 표적을 바라지만 이것은 단지 육(肉)적인 표적일 뿐, 영(靈)적인 표적은 내가 변화는 겁니다. 세상만 바라본 내가 주님을 진정을 바라보는 간절함입니다.

 

 

짧은 이야기 1

한 농부가 항상 일에 쫓기며 불평만 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는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제 손이 두 개로는 일을 다 할 수가 없어요. 손을 한 개 더 주세요.”

 

며칠 후, 꿈속에서 하나님이 나타나 말씀하셨습니다. “진짜로 원하니? 손을 더 줄 수 있지만, 후회하지 않겠니?” 농부는 “절대 후회하지 않을 거예요. 손이 세 개가 되면 이제는 바랄 게 없을 거예요”라고 대답했습니다. 다음 날 아침, 그는 세 개의 손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덕분에 일을 두 배나 더 할 수 있었고, 집도 날로 번창했습니다. 하지만 점점 다른 문제가 생겼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정상인으로 보지 않았고, 구경하러 오는 사람들도 많아졌습니다. 바쁘게 일할 때는 몰랐지만, 하인이 많아져서 일할 필요가 없어지자, 그는 세 개의 손이 오히려 거추장스럽게 느껴졌습니다. 이렇게 후회가 찾아왔고, 그는 “하나님이 주신 것에 감사하지 않고 욕심을 부린 나 때문에 이렇게 힘든 거구나”라는 생각만 하게 되었습니다.

현실에 늘 감사하며 사셨으면 합니다. 주님이 주실 수도 있고 빼앗을 수도 있습니다. 주님이 함께하심에 감사하면 현실에 불평하고 한탄하지 않습니다.

 

 

짧은 이야기 2

낙타는 하루를 시작하고 마칠 때마다 주인 앞에 무릎을 꿇습니다. 하루 일을 마치면 낙타는 주인 앞에 무릎을 꿇고, 등에 있는 짐이 내려지기를 기다립니다. 그리고 새날이 시작되면 다시 주인 앞에 무릎을 꿇고 주인이 주는 짐을 지게 됩니다. 주인은 낙타의 상황을 잘 알고 있어서, 낙타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짐을 얹어 줍니다. 낙타는 주인이 주는 짐을 기꺼이 받아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은 감당할 만큼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삶을 원하십니다. 믿음이 작고 연약한 자에게는 1 달란트를 주고 충성하기를 원하시고 믿음이 크고 장대한 자에게는 10 달란트를 주셔서 그리스도의 일을 감당하시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이 주신 작은 일이지만 그 일에 충성하면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고 하십니다. 

 

짧은 이야기 3

라디오와 TV가 꺼지자 집안이 조용해졌습니다. 마치 생명력이 있는 무엇인가가 사라진 듯이 갑자기 주위가 고요해졌습니다. 그렇습니다, 전기가 나간 것입니다. 나는 전기 제품들이 내는 소음이 있었음을 잊고 있었습니다. 그 소음에 너무 익숙해져서 소음이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린 것이었습니다.

세상의 소음에 묻혀 살다 보니까. 우리는 점점 더 아무런 생각 없이 하루하루를 지냅니다. 마치 세상의 소음이 익숙한 것처럼 되어 도리어 조용해지면 더 불안합니다. 그래서 세상의 소리를 틀고 모든 것을 잊으려고 합니다. 하지만 삶에 영혼이 없습니다. 세상에 두둥실 떠다니는 구름처럼 그냥 흘러는 가는데 삶의 꽃과 향기는 없는 삶입니다. 이런 소리는 끄시고요. 하나님의 말씀 소리를 들어보세요. 이런 소리로 인해 하나님의 말씀이 안 들어옵니다. 내 안에 말씀이 안 들어옵니다.

 

오늘 하루 막달라 마리아처럼 간절함으로 예수님을 찾는 하루가 되셨으면 합니다. 사랑하고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