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맘에 빛 되신 예수님. 요한복음 8장 12절~30절에 대해 QT 하겠습니다.
요한복음 8장 12절~30절
우리가 세상 사람들과 다른 것은 영적인 은혜를 소유하고 있다는 겁니다. 우리는 주님이 주신 이 영혼을 학대하거나 무관심하게 흘려보내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매일매일 영혼 훈련이 필요하고 이 훈련의 주관자는 예수님이셔야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매일매일 듣고 하루하루를 시작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래야 내 영혼이 살 수 있습니다. 그래야 내 영혼이 주님 앞에 설 수 있습니다.
이 영적인 훈련은 나와 예수님의 관계 회복으로 이어집니다. 남들이 시선에 움직이는 훈련이 절대 아닙니다. 내가 오직 주님 앞에 바로 서는 훈련입니다. 남들은 나의 겉만 보지만 주님은 나의 속마음을 보십니다. 그래서 나의 속마음을 주님께 내려놓을 수 있습니다. 그때부터 진정한 주님과의 교제가 시작됩니다. 남이 시켜서 하지 마세요. 나 스스로 주님께 모든 것을 털어놓고 한 걸음 나아가 보세요. 내 안에 평안함이 머물 겁니다. 내 안에 하루의 기쁨이 열릴 겁니다.
12절 예수께서 사람들에게 다시 말씀하셨다. “나는 세상의 빛입니다. 나를 따르는 사람은 결코 어둠 속을 걷지 않을 것이며, 생명의 빛을 얻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빛이십니다. 빛은 어둠과 다르게 드러납니다. 숨기고 감추고 이런 것이 안 됩니다. 투명하게 자신을 비추는 겁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나는 세상의 빛입니다. 나를 따르는 사람은 결코 어둠 속을 걷지 않을 것이며, 생명의 빛을 얻을 것입니다”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바라보는 삶은 빛을 받는 사람입니다. 내 안에 어둠을 쫓아내는 행위입니다. 그래서 내 안에 예수님의 생명을 얻는 겁니다. 내 안에 예수님의 생명을 얻는 이 자체가 너무 놀라운 기적 아니니까. 그래서 내 마음을 예수님의 빛(말씀, 기도, 찬양)으로 비춰야 가능합니다.
13절 바리새파 사람들이 따졌다. “당신 자신이 스스로 옳다고 하니, 당신의 증언은 참되다고 할 수가 없소!”
바리새인이 그렇게 예수님을 미워하고 죽이려는 것은 예수님이 빛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숨겨진 죄악들이 빛을 통해 세상에 드러나는 것을 무서워했습니다. 그래서 빛을 제거하려고 사람의 논리를 제시합니다. 자신의 죄를 영원히 죽을 때까지, 감추고 싶은 마음에서 그랬습니다. 죄악은 너무 무서운 결과를 도출합니다. 내 죄악을 감추기 위해 빛을 죽여야 합니다. 내 욕심을 감추기 위해 빛을 제거해야 합니다. 내 마음에 어둠과 죄악을 두기 위해 이런 어리석은 짓을 해야합니다.
14절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나 자신에 대한 말일지라도, 내 증언은 진실로 참된 것이오. 나는 내가 어디에서 왔으며, 또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알기 때문이오. 그러나 당신들은 내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는지를 알지 못하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인간의 숫자의 증언보다 하나님의 말씀이 더 크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이 어디서 왔는지 모르는 이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15절 당신들은 사람의 잣대로 판단하지만, 나는 어느 누구도 판단하지 않소.
바리새인은 사람의 잣대를 모든 것을 판단하지만, 예수님은 하나님의 잣대로 판단합니다. 인간의 잣대와 하나님의 잣대입니다.
이들에게 예수님이 무서운 말을 합니다. 마태복음 23장 27절 바리새파 사람들과 율법 교사들아, 너희에게 화가 있을 것이다. 이 위선자들아, 너희는 아름답게 꾸며 놓은 무덤과 같다. 겉은 좋아 보이지만, 그 속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썩은 것으로 가득 차 있다. 28절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거룩한 사람처럼 보이지만, 속에는 온갖 위선과 죄가 가득 차 있다.
우리는 진정으로 예수님의 빛을 받으면 내 안에 악함이 드러나 있는 것에 충격을 받습니다. 그러나 이게 정상입니다. 내의 악함이 드러나야 회개를 할 수 있고 회계를 해야 주님의 용서를 받을 수 있습니다. 주님의 빛은 주님이 주신 축복입니다.
하지만 문제가 있는데요. 자신이 죄를 모르는 경우입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사람의 의를 갖고 늘 옮고 그름을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바리새파 사람처럼 늘 율법을 갖고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정죄하며 늘 그 기준으로 남을 판단합니다. 이곳에 빛이 들어가기는 어렵습니다. 나 자신이 바꿔야 하는데 쉽지 않습니다. 자신이 왜 바꿔야 하는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런 자에게는 예수님이 빛이 쉽게 들어갈 수 없습니다.
16절 하지만 내가 판단한다면, 내 결정은 언제나 옳소. 왜냐하면 나는 혼자가 아니라, 나를 보내신 아버지와 함께하기 때문이오.
17절 당신들의 율법에는 ‘두 사람이 증언하면 참되다.’라고 기록되어 있소.
18절 그처럼, 내가 나 자신을 위한 한 사람의 증인이고, 나를 보내신 내 아버지 또한 나를 위한 또 한 분의 증인이시오.”
나보다 여러 사람이 판단하고 회의하면 오류를 줄여서 바른 판단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율법은 두 사람이 증언하면 참되다고 하신 겁니다. 만약에 나에게 똑같은 지적을 상대로부터 두 번 이상 받았다면 나의 문제를 놓고 깊게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잘못을 회개해야 합니다. 한 사람의 지적을 받았을 때, 잠시 무시했다면 똑같은 지적으로 다른 사람이 말한다면 또 무시하면 절대로 안 됩니다. 이게 나의 잘못이기 때문입니다. 늘 귀가 열려야 합니다. 남의 충고를 꺼리지 말고 감사로 받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나 자신이 삽니다. 나 자신은 자신이 판단하기 어렵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도 바뀌지 않는다면 주님의 빛으로 내 마음을 비치세요. 그러면 내 죄악이 드러나요. 이(내 죄)를 알아야 내가 바뀔 수 있기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예수님 빛으로 내 마음을 비쳐야 합니다. 그러면 놀라운 변화가 있을 겁니다. 이런 훈련이 계속되면 나 자신도 서서히 예수님을 빛을 찾아 한 걸음씩 디딜 겁니다.
19절 그러자 그들이 예수께 물었다. “당신의 아버지가 어디 있소?”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당신들은 나도 모르고, 내 아버지도 모르오. 만일 당신들이 나를 알았더라면, 내 아버지도 알았을 것이오.”
예수님을 모르면 하나님도 모른다고 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들에게 하나님을 모른다고 단정하십니다. 다시 해석하면 바리새인이 형식상 하나님을 믿는 것은 거짓입니다. 살아있는 하나님의 진심은 모르고 죽어 있는 문자에 맹신하는 어리석음입니다.
20절 이 말씀은, 예수께서 성전에서 가르치실 때 헌금함이 있는 곳에서 하셨다. 그러나 아무도 예수를 잡아가지 않았다. 아직은 그의 때가 이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21절 예수께서 다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떠나갈 것이고, 당신들은 나를 찾다가, 당신들의 죄 가운데서 죽을 것이오. 그리고 내가 가는 곳에 당신들은 오지 못하오.”
오직 예수그리스도의 믿음을 통해서 천국을 갈 수 있지만, 이들은 예수님을 부인합니다. 그래서 갈 수가 없습니다.
22절 유대인들이 수군댔다. “아니, ‘내가 가는 곳에 너희는 오지 못할 것’이라니, 저 사람이 자살을 할 셈인가?”
유대인들은 영적인 눈을 뜨지 못합니다. 그래서 유(肉)적인 말을 합니다.
23절 예수께서 이어 말씀하셨다. “당신들은 아래에서 왔고, 나는 위에서 왔소. 당신들은 이 세상에 속해 있지만, 나는 이 세상에 속해 있지 않소.
24절 당신들이 당신들의 죄 가운데서 죽을 것이라고 말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오. 내가 나에 대해 누구라고 주장하는 말을 당신들이 믿지 않는다면, 당신들은 당신들의 죄 가운데서 죽고 말 것이오.”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죄 가운데서 죽습니다. 죄 가운데서 죽지 않으려면 주님 안에서 죽어야 합니다. 죄에서 벗어나 주 안에서 살다가 죽는 것이 최고의 복입니다.
요한계시록 14장 13절을 보면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아무리 부유하고 건강하게 살아도 죄 안에서 사는 것은 끔찍한 일입니다. 하지만 가난하고 몸이 아프더라도 주 안에서 사는 것은 은혜입니다.
죽을 때 주 안에서 죽는다면 그보다 큰 축복은 없습니다. 하지만 죽을 때를 우리는 모릅니다. 그래서 매일 주님 안에서 살아야 합니다. 누구도 영원히 살 수 없습니다. 주님이 부르시면 언제라도 가야 합니다. 그래서 축복된 죽음을 위해서 우리는 준비하고 있어야 합니다. 이 말씀이 마음에 와닿지 않을 수도 있지만, 잠시 눈을 감고 과거의 우리 할머니와 할아버지, 그리고 조상을 생각해 보세요. 이분들이 내 곁에 지금은 안 계십니다. 그래서 죽음은 가까운 나 자신의 문제입니다. 그래서 쉽게 생각하고 넘어가서는 안 됩니다.
25절 그들이 물었다. “도대체 당신이 누구란 말이오?”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누구라는 것은 지금까지 내내 말해 왔지 않소.
26절 내가 당신들에 대해서 말할 것도 많고 판단할 것도 많지만, 나를 보내신 분은 참되시므로, 오직 나는 그분에게서 들은 것만을 세상에 말할 뿐이오.”
27절 그러나 그들은 예수께서 자신의 아버지를 두고 말씀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대화가 안 됩니다. 이들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묻고 또 묻습니다. 그러니 대화가 안 되고 대화가 안 되니, 예수님 말씀이 깨달아지지도 않습니다.
우리가 오늘 말씀이 내 안에 들어가 않으면, 먼저 모든 것을 내려놓고 내가 예수님을 진정으로 믿는지 묻어야 합니다. 진정으로 예수님과의 관계부터 회복해야합니다. 그래야 그 다음에 말씀이 내 안에 살 수 있습니다.
28절 그래서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당신들은 인자가 높이 들려 올려진 다음에야, 내가 누구라고 주장했던 내 말이 참되다는 것과, 또 내가 내 마음대로 말하지 않고, 오직 아버지께서 가르쳐 주신 것만을 말했다는 것을 비로소 깨닫게 될 것이오.
29절 나를 보내신 분은 항상 나와 함께 계신다오. 그분은 결코 나를 혼자 버려두시지 않소. 그것은, 그분께서 기뻐하시는 일만을 내가 항상 하고 있기 때문이오.”
예수님은 하나님과 치밀한 곳에서 함께 사셨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매일 바라보고 살아야 합니다. 그렇게 살아야 주님과 함께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만 바라보는 인생은 주님이 너무 기뻐하십니다.
주님을 바라보는 거는 주님의 뜻대로 살겠다는 뜻입니다. 주님의 뜻대로 사는 자를, 주님은 너무나 기뻐하십니다. 왜냐하면, 주님은 우리와 소통하시길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요즘 우리의 모습을 보면 아집과 고집으로 뭉쳐 있어. 주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 안 들어갑니다. 우리는 주님만 바라보기를 꺼립니다. 왜냐하면, 내 아집과 고집이 바르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의 이유는 주님만 바라보는 것이 너무나 부담스럽다는 이유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분명히 알아야 할 사실은 현실이 힘들고 어렵다고 하더라도 주님만 바라보세요. 주님과 소통하세요. 그래야 주님이 우리 안에 살아계심을 믿을 수 있습니다. 내 마음에 주님이 부활하심을 가질 수 있습니다. 빛되신 주님과 함께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주님을 바라보면 현실에 손실이 큽니다. 세상은 그렇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현실만 바라보는 사람은 결코 주님을 바라볼 수 없습니다. 서로 너무 다르기 때문입니다. 물론 현실을 외면하고 살라는 것은 전혀 아닙니다. 모든 일을 할 때, 주님께 묻고 시작하라는 겁니다. 주님의 지혜를 구하세요. 그래야 주님과 한 몸으로 살 수 있습니다. 그다음에는 우리가 주님의 기쁜 일을 찾을 수 있습니다.
30절 이 말씀을 듣고,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게 되었다.
우리는 늘 예수님의 빛이 내 안에 비치기를 바라며 살아야 합니다. 내 속을 환히 비춰야 합니다. 과거의 어두웠던 길을 걸었다면 이젠 예수님께 내려놓고 빛으로 나와야 합니다. 어느 학자는 과거 나의 비밀을 감추고 나의 어둠을 남에게 드러내지 않은 것이 마치 세상의 처세술로 가르칩니다. 그러나 우리는 믿는 자입니다. 빛되신 주님과 매일 동행해야 합니다. 내 안에 빛이 있어야 합니다. 더 나아가 내 빛으로 다른 이들도 비춰야 합니다.
빛이 사라지면 우리는 어둠을 찾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이 먹지 말아야 할 선악과를, 먹는 죄를 짓고 나서 빛이 사라지니까. 어둠으로 자꾸 자신들의 몸을 숨기려고 합니다. 자신의 부끄러움을 감추려고 합니다. 이게 세상의 죄 가운데 사는 나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해 달라야 합니다. 빛을 찾아 살아야 합니다. 자꾸 어두운 것만을 좋아하시면 내 영혼이 점점 죽어갑니다. 죽은 영혼은 썩은 육신보다 못한 삶을 삽니다. 그래서 너무 귀한 내 영혼을 빛으로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그렇기 위해서는 주님의 빛을 받아야 합니다.
짧은 이야기 1
한 아이가 손가락을 어딘가에 부딪치고 아파서 울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이는 아픔을 참으려고 노력하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본 엄마가 “너무 아프게 보이는 구나. 하지만 엄마의 손가락이 더 아프다”라고 말하자, 아이는 “왜 엄마 손가락이 더 아파요?”라며 궁금해했습니다.
우리는 못 느낍니다. 내가 아프고 슬프고 때론 기쁘고 즐겁고 하는 것이 나의 기준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나에게 발생하는 모든 문제를 다 내가 짊어지려고 합니다. 마태복음 11장 28절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모든 사람은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할 것이다. 주님이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우리가 주님을 바라보지 않아 모르는 겁니다. 주님은 우리가 아프면 함께 아파하십니다. 우리의 아바 아버지이시기 때문입니다.
짧은 이야기 2
한 사람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난 10년 동안 저는 수영을 하려면 물에 가라앉지 않으려고 계속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수영을 잘 하는 사람이 저를 보고 이렇게 외쳤습니다. ‘물과 싸우지 말고 물이 당신을 떠받쳐 줄 거라고 믿으세요.
우리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되려고 부단히 노력합니다. 하지만 세상에 저서 매번 꼬꾸라지곤 합니다. 그럴 때마다 자신에게 실망합니다. “또 세상에 졌구나”라고 말합니다. 매번 그렇습니다. 여기서 이기는 비법은 주님만 바라보는 겁니다. 주님이 내 마음에 있음을 믿고 모든 문제를 주님께 내려놓고 묻는 겁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 되는 것은 먼 곳에 있지 않습니다. 가까운 내 마음에 비밀이 있습니다.
짧은 이야기 3
미국의 링컨 대통령은 항상 천사를 받은 것은 아닙니다. 비판자들은 그를 ‘매력 없는 지도자’, ‘무식한 지도자’, ‘독선적인 지도자’라고 비난했습니다. 하지만 링컨은 그런 비판에 직접 반박하지 않았습니다. 혹독한 공격을 받은 때면, 그는 밤늦게까지 백악관의 기도실에서 큰소리로 기도했습니다. 링컨은 뇌물 제안을 많이 받았지만, 한 번도 부정한 돈을 받지 않았습니다. 그의 정직성은 어머니의 “도적질 하지 말라”는 훈계 덕분이었습니다. 그의 집무실에는 다음과 같은 성구가 걸려 있었습니다.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하나님이 너와 함께 하느니라”
링컨은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두려울 때, 분하고 억울할 때도 절대로 사람과 상대하지 않았습니다. 내게 계신 하나님께 가서 털어놓았습니다. 이는 세상을 이기는 힘이 되었고 세상과 불의에 맞서는 강한 능력이 되었습니다. 여러분도 링컨처럼 내 마음에 빛으로 오신 주님의 선하신 능력으로 충분히 세상을 이길 수 있습니다. 부탁입니다. 믿고 따르세요.
오늘 “내 맘에 빛 되신 예수님” 함께 하는 하루가 되셨으면 합니다. 사랑하고 너무 감사합니다.
'성경'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따르겠습니다. 요한복음 10장 22절~42절 (2) | 2024.10.21 |
---|---|
예수님의 양이 되고 싶습니다. 요한복음 10장 1절~21절 (0) | 2024.10.16 |
막달라 마리아가 첫 부활의 증인인 이유. 요한복음 20장 1절~18절 (0) | 2024.10.07 |
예수님이 나귀 타시고 내 마음에 입성하십니다. 요한복음 12장 12절~19절 (1) | 2024.09.30 |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니,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 요한복음 8장 1절~11절 (2) | 2024.09.23 |